(서평) 블루오션 전략 - 전략의 시대에서 혁신의 시대로

이 글은 원래 일간지에 기고한 글이었습니다. 경영경제 분야의 좋은 책들을 선정하고 그 책의 요점을 정리하고 오늘에 대한 시사점을 생각하는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썼습니다. 저는 블루오션 전략에 대하여 썼습니다. 신문사 사정으로 계획대로의 진행이 어려워져서 여기에 올립니다.

한국 기업에의 의미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의 가장 큰 의미는 우리 나라의 기업들이 ‘혁신’이라는 개념과 만나게 한 것이다. 이 책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한국기업들의 혁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바뀌었다.

블루오션전략 출간(2005년) 몇년전 필자는 보험회사와의 컨설팅 프로젝트에서 온라인 보험 사업을 시작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보험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것”이라는 보험업계의 오랜 금과옥조는 점잖은 편이었다. 가격을 할인한 온라인 보험을 내놓는다면 설계사 판매를 깎아먹고 조직만 망칠 것이라는 반박은 맹렬하였고, 한 임원은 회의중에 벌떡 일어나 “내 목을 치기 전에는 이 사업 못한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로웠던 것은 벤치마킹 요구였다. 당시에는 컨설팅 보고서에 해외 사례 벤치마킹은 거의 필수였다. 어떤 전략을 권고할 때에, 경제적 분석이나 논리보다도 “해외 유명기업이 이렇게 합니다”라는 페이지 하나가 더 위력을 발휘하였다. 임원들은 필자에게 “성공 사례를 가져와라. 그러면 생각을 고치겠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찾기 어려웠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온라인 보험은 아직 별로 시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친 필자는 한 회의에서 얘기하였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혁신입니다. 사례를 찾기 어려움은 당연합니다. 저는 우리가 앞서서 하길 바라지만, 정 확신이 안 선다면 다른 기업이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결국 최고경영자의 결정으로 사업은 시작되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책에나 나올 법한 대기업에서 기존사업에 도전하는 파괴적 혁신을 만드는 어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소중한 경험이 되었음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일을 블루오션전략이 출간된 다음에 했다면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 후에 혁신을 대하는 한국기업들의 태도는 급변하였다. 2005년 국내에 출판되자마자 이 책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저자들의 국내 초청 강연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마치 록스타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한국 기업들이 과거의 사업방식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세기 한국 기업들은 선진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를 모방하거나, 선진기업의 하청업체 역할을 하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선두에 가까이 가게 되면서, 그리고 전통적인 비용경쟁력을 잃고 중국 등 개발도상국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면서, 기존 사업방식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경영자나 임원들만 환호한 것이 아니었다. 직장인들이나 청년들도 “왜 이렇게 일해야 하지?”, “꼭 이렇게 정해진 길만 있나?”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블루오션전략은 ‘가치혁신을 통해서 푸른 바다로 나가자.’라는 가뭄 속 단비같은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주었다.

혁신에 대한 책이 블루오션전략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국의 상황과 매우 잘 맞아 떨어졌다. 책의 저자는 해외 유명 경영대학원의 한국인 교수였고, 책은 세계적으로 먼저 호평을 받았다. 공공분야에서 2000년대초부터 혁신이라는 화두가 등장하여 귀에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006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창조경영을 언급한 이후 주요 기업의 경영전략에 창조, 혁신이 점점 많이 보이더니, 최근에는 기업인들의 말에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내용 소개

블루오션전략은 김위찬, 르네 마보안 두 교수가 19세기말에서 2000년까지 30개 산업의 150가지 사례를 분석한 결론을 담고 있다. 필자가 본 핵심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블루오션 전략의 목표는 기존 시장에서 경쟁자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치혁신으로 새로운 시장(블루오션)을 창출하여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2.    가치혁신은 차별화와 비용절감의 동시 추구다. 이를 통하여 고객과 회사를 위한 가치를 동시에 증가시킨다.
3.    전통적으로 혁신은 창조적인 개인의 아이디어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블루오션전략에서 제공하는 도구들을 활용하면 체계적 반복적으로 만들 수 있다.

(책의 뒷부분에는 전략을 개발한 후의 실행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그 부분은 별도의 책으로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블루오션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할 독자들에게 또다른 주제를 던져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1. 기존시장에서의 경쟁우위가 아닌 새로운 시장의 창출을 목표로 하자는 것은 이 책이 가져다 준 가장 중요한 제안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이 메세지 하나만은 깊이 새겼을 것이다.

과거의 전략 이론들은 기존 시장, 즉 레드오션에서의 경쟁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지적은 매우 공감한다.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잠깐 과거의 전략이론에 대하여 짚어보자.

기존의 경영전략 이론들은 ‘경쟁’ 개념을 기반으로 하였다. 마이클 포터의 책은 제목부터 ‘경쟁전략’이었다. ‘전략’ 자체가 원래 군사 용어다. 경영학자나 컨설턴트들은 일정한 시장의 경계 내에서 점유율을 놓고 다투는 것이 기업전략의 본질이고 이는 전쟁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전략의 일차적인 목표이고 결국 수익성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터와 시장은 다르다. 기존 시장에서의 경쟁이 기업전략의 전부라면, 포드는 더 빠른 말을 만들었을 것이고, 잡스는 더 좋은 일반전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혁신은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모두 그렇게 컸다. 기존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그 법칙을 만든 강자들을 넘어뜨린다. 음악의 디지털화는 타워레코드를 비롯 수많은 크고 작은 음반 소매점의 문을 닫게 했고, 스마트폰은 휴대전화의 강자 노키아를 남의 나라로 팔려가는 신세로 만들었다. 아파트와 도시가스는 연탄을 추억의 제품으로 만들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혁신이다. 레드오션의 강자로 머무는 것은 안전해 보이지만 착각이다.

기존의 전략 이론들의 또 다른 문제는 시장을 현상분석적으로만 보았다는 것이다. 마이클 포터의 산업분석이나 컨설팅 회사들의 시장 분석은 어떤 시장이 매력적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시장의 크기, 성장률, 수익성, 경쟁 강도, 고객의 협상력 등 드러난 정보들이었다. 재무 투자자적 관점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런 관점이 매우 경직된 시장관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의류산업의 매력도를 분석하면 과거 수십년동안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으로 판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성장하는 시장도 아니고, 경쟁자는 많고, 소비자는 아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유니클로, 자라 등 세계적인 성공사례가 나오고 있다. 무슨 의미인가? 어떤 시장이든지 혁신의 가능성이 있고, 레드오션도 블루오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상으로 매력도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데이터는 과거에 대해서만 존재한다.

2. 가치혁신이 차별화와 비용절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는 부분은 혁신에 임하는 기업의 자세로는 지극히 옳다. 하지만 추구를 넘어서, 둘 다 이뤄야만 의미있는 혁신이라고 문구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폰은 기존 피처폰에 비하여 가치를 높였지만, 가격도 올렸다. 하지만 거대한 블루오션을 창조하였다. 가치의 상승과 비용의 절감 양쪽 모두를 최대한 추구하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부분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과 비교가 된다. 1997년에 출간된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알려지기 시작한 그의 이론은 세계 기업들에게 가장 널리 참고되는 혁신 이론일 것이다. 한국에서 블루오션전략이 혁신 붐을 일으켰다면, 영어권에서는 혁신기업의 딜레마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기존 기업의 관점에서 혁신을 방어하고 이용하는 관점에서 쓰여진 이론들인데, 파괴적 혁신은 기존 강자가 쓰러지는 메커니즘을 파헤쳐서인지 실리콘밸리 창업기업들에게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파괴적 혁신은 성능은 높고 가격은 낮은 가치혁신적 제품이 아니라, 성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낮은 제품이 파괴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간단히 설명해보자. 신규 진입 제품이 기존 강자의 제품보다 성능이 좋고 가격/마진도 높다면(존속적 혁신) 기존 강자의 고객들 중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고객, 즉 최상급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이 신규 진입자로 옮겨갈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 강자는 적극적으로 유사한 제품을 내며 경쟁할 것이다. 반면에 신규 진입 제품이 기존 강자보다 가격/마진도 낮고 성능도 낮다면, 기존 강자는 기껏해야 가장 수익성이 떨어지는 고객을 놓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신규 진입자는 성장할 수 있고, 점점 성능도 개선하여 결국은 기존 강자를 위협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의 해외시장 개척 역사가 이런 과정과 비슷하다.

그 점에서 파괴적 혁신과 가치혁신의 주장은 다르다. 어떤 혁신이 더 성과가 좋은지는 실제 자료를 갖고 실증적인 비교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사실 파괴적 혁신도 모든 혁신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표적으로 아이폰의 성공을 매끄럽게 설명하기 어렵다. 아이폰은 기존의 피처폰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대신에 가격이 낮은 것이 아니라, 성능도 좋고 가격도 높은 존속적 혁신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텐슨 교수는 아이폰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노키아 등 기존 강자들이 무너지고 애플은 성공하였다. 이론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후에 아이폰의 성공을 보고서, 크리스텐슨 교수는 자신의 설명을 수정하긴 하였다.)

3. 블루오션전략은 가치혁신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4가지 액션 프레임워크, 전략 캔버스, 6가지 통로, 구매자 경험 사이클 등의 도구는 가치혁신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지침들이다.

혁신이 창의적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전유물이냐, 교육될 수 있는 것이냐는 분명하지 않다. 블루오션전략의 저자들은 교육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분명히 매우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특별히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도 일정한 ‘패턴’에 익숙해지면 혁신을 만드는 능력을 키울 수는 있다고 본다.

극단적으로 일반화하자면 사업적 혁신에 대한 지침은 딱 하나이다. “가치를 올리거나, 가격을 낮추어라.” 타고난 혁신가에겐 이것으로 충분하겠지만, 범인들에겐 선문답이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판다”라는 패턴이 주어지면 누구나 “인터넷으로 우리 제품을 판매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마존 등 초기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인터넷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라는 하나의 패턴을 제공하였기에 이후 다양한 시장에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등장하였다.

블루오션전략에서 저자들이 소개하는 도구들도 일종의 패턴들이다. 패턴은 바둑의 정석, 수학의 공식 같은 것이다. 정말 고수나 천재라면 정석이나 공식이 없어도 잘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정석이나 공식을 익힘으로써 일정 수준의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이전의 경쟁전략 이론들은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를 별로 제시하지 않았고 분석에 치우쳐 있었다. 냉정하게 보자면 아이디어의 중요성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블루오션전략이나 파괴적 혁신 이론들은 유용한 패턴을 제시하였다.

물론 혁신을 위한 패턴은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블루오션전략이나 파괴적 혁신에서 제시한 것들이 전부가 아니다. "혁신을 위한 10가지 사업모델" 같은 책은 읽고 참고하되,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책이 그렇게 주장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이 매우 창의적이지 않더라도, 많은 패턴을 몸에 익힌다면 혁신가로서의 역량은 향상될 것이다.

블루오션전략 이후

블루오션전략이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혁신에 눈을 뜨게 한 것은 큰 기여였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과연 한국기업들은 얼마나 혁신을 이루었을까? 경영자들의 말에 나오는 빈도는 훨씬 높아졌지만, 실제 혁신적인 시도가 많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스타트업들도 독창적인 시도가 차츰 눈에 띄지만, 아직은 해외에서 나온 사업모델을 국내에 적용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았다, 삼성이 일본의 소니를 넘어섰다, 현대가 토요타의 턱밑까지 추격했다는 얘기들을 한다. 재무적인 관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세계가, 특히 서구가 일본을 다른 아시아 국가와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하였거나 전쟁의 폐허에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거라면 늦었지만 우리도 해냈고, 이제 중국도 하고 있다.

서구의 전문가들 중에는 제조기술의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공업, 대량생산, 그리고 린(Lean) 생산 방식이다. 대량생산은 생산성 측면에서 엄청난 도약을 이루어 인류가 가난을 벗어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따른 재고 발생, 품질관리의 어려움 등 문제점을 보였다. 이를 개선한 새로운 방식인 린 생산은 20세기 후반 토요타에서 개발되었다. 린 생산방식은 토요타 생산방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디트로이트의 빅3는 처음엔 일본 자동차가 싸니까 성공한 것만으로 폄하하다가, 나중에 (보통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생산성과 품질의 동시 향상을 이루었음을 알고는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미국 자동차들이 그 본질을 깨닫고 습득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모든 산업들이 린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생산기술의 역사로 보면 전세계는 현재 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토요타는 그래서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회사가 되었다.

소니도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으로 전자산업 혁신의 역사에 이름을 올려 놓았다. 스티브 잡스도 소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혁신기업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올라갈 것이다. 재무적 성공과는 또 다른 리그이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기업들도 이젠 그런 생각을 할 때이다. 세계 혁신가의 전당에 오를 기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