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두려워할 미래 시나리오 (2005년에 쓴 글)

(2014년 새해 벽두부터 삼성전자 위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시장 변화를 관찰해 보면, 예상할 수 없는 변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예상할 수 있는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현실이 되어서야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005년에 쓴 글을 수정없이 다시 올려봅니다. 중국 등 신흥국 기업의 문제는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삼성은 제 글에서보다는 적극적으로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인 상황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 위협으로 쓴 소비자 변화는 이후 필자의 생각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공유하겠습니다.)

 

삼성전자는 엄청난 회사가 되었다. 90년대 초만 해도 TV나 세탁기를 만들기 위하여 선진국 제품을 분해조립 하여 보던 회사가 이제는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전자제품에서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니 엄청난 변화이고 성공이다. 현재의 삼성을 보고 있으면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조직이고,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받을 것이다. 게다가 과거의 미국기업이나 일본기업이 그랬듯이 성공에 심취하여 게을러질 것 같지도 않다. 경영진은 항상 긴장과 미래 전략의 구상에 여념이 없고, 회사는 가장 이익이 많이 나는 회사답지 않게 근면하고 검소하다. 하지만 과거의 모든 기업들이 그래왔듯이 삼성에게도 약점은 생길 것이고, 천적 같은 위협이 생길 것이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중국, 인도 등 신흥 개발국의 기업, 둘째는 상상력사회의 소비자이다.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변화는 자기의 강점이 약점이 되는 것이다. 기술적 어려움이나 소비자 인지도의 부족 같은 문제들은 어렵지만 의욕과 자원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삼성 정도의 회사면 이러한 문제들이 치명적 약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기술은 최고의 과학기술자들을 영입하거나 그 기술을 사거나 하면 되고, 새로운 시장이나 상품에서의 인지도 부족은 소비자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고 마케팅 자원을 쏟아 부어서라도 결국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강점이 약점이 되는 경우는 다르다. 모든 변화의 근본 원인은 새로운 것, 즉 이노베이션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노베이션이 출현할 때 기존의 강자가 넘어진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변화가 기존 강자의 강점을 약점 내지 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변화가 고객들에게 가치를 주는 경우라도 기존 강자는 그러한 변화를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대응에 그치는 것이다.

반대로 강자들 사이에서 약자가 자기 영토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강자의 약점에 해당하는 것을 사업화 하는 것이다. 최근에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기업 전략이나 이노베이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데, 아무리 혁신적인 신규 사업을 창출했다고 하여도 그것이 기존 강자가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사업이라면 일종의 시장조사를 제공한 꼴이 될 수 있다. 치고 빠질 생각이면 모를까, 의미 있는 기업을 이룩하려면 기존 강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흥 개발국 기업의 위협

신흥 개발국 기업들은 왜 삼성전자에게 위협이 될 것인가? 쉽게 생각하려면 70, 80년대 일본 자동차와 미국 자동차의 경쟁에 비유할 수 있다. 일본 자동차들이 미국 자동차 산업을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자동차들이 처음부터 미국 자동차 회사들보다 월등한 기술과 품질을 갖고 있어서? 전혀 아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일본 자동차들이 처음에 선보인 상품들은 미국 자동차들에 비하여 작고 품질도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것들이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보기에는 장난감이었고, 자신들의 주력 상품인 대형, 고급 자동차와는 경쟁도 되지 않았다. 미국 회사들에게는 가장 돈 안 되는 시장 인 저소득층을 가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고객과 수익을 가질 수 있었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미국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한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점점 위로, 위로 올라갔고 결국 오늘날 미국 제조업의 상징과 같았던 메이저 3사 중에 크라이슬러는 벤츠에 합병되고 GM과 Ford는 신용 등급이 추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위의 사례를 중국 기업과 삼성의 시나리오로 바꾸어보자.

  • 중국 기업들이 저가의 단순한 제품들을 일부 시장에 등장시킨다. 뉴스거리는 되지만 아직 큰 반응은 없다. 삼성의 주요 경영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경영자들은 최근의 성공 경험에 고무되어 “삼성은 계속 첨단, 고급 제품을 만들고 높은 가격을 받아서 이익률을 높여야 한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 (여러 국가에서) 일부 고객들이 중국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 고객들은 소득 수준이 낮아서 삼성 제품을 사기 어렵거나, 아니면 “나는 이 정도 기능에 이 가격이면 충분해. 삼성 제품처럼 첨단의 복합 기능은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 삼성은 대응하지 않는다. 일부에서 저가 공세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고, 약간의 공감대를 얻기도 하지만 아직 작은 부분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연구소나 기획실에서 “아직은 우리 제품보다 품질이 몇 년 뒤져 있다”라고 얘기하고, 경영진들도 중국 제품을 매장 등에서 보면서 아직 뭔가 조악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주 전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 시장에서 소니, 인텔, 모토롤라, 노키아 등과의 경쟁은 치열하고 증시도 그 쪽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룬다. 현실적으로도 고가 시장, 선진 시장이 이익의 대부분을 창출하고 있다.
  • 저가의 중국 제품들이 상당한 품질 수준에 도달한다. 이제는 저가이지만 저급이라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 되었다. 첨단 기능은 약하지만 기본적인 기능에서는 거의 삼성 제품 못지 않은 성능이다. 중국 제품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 된 소비자들이 많아졌고, 일부 중국 브랜드들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하다. 삼성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 전략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다. 저가 시장에 강력히 대응하자는 의견과 오히려 더욱 고급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저가 시장에 강력히 대응하자는 의견은 “이대로 가면 중국이 Mass Market의 주류를 다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얘기하고, 고급화 의견은 “우리가 스스로 이익률을 떨어뜨리자는 얘기냐? 더 좋은 제품을 내 놓음으로써 계속 고마진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이런 논쟁이 1-2년 지속되면서 중국 회사들의 시장은 더욱 확대된다.
  • 회사내의 전략적 논쟁의 결과, 삼성은 저가 시장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기로 결정하였다. 마진을 스스로 낮추는 제품을 팔 이유가 없고, 삼성의 고급/첨단 이미지와 맞지 않고, 어차피 비용 경쟁력 차원에서도 중국 기업들과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환영하고 주가는 상승한다. 저마진 사업들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자 이익은 상승하기 시작하고, 역시 옳은 결정이었다고 안팎에서 얘기한다.
  • 한 동안은 태평성대처럼 보였으나, 문제가 여기 저기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첫째로 저가의 중국 제품이 품질이 괜찮다는 평판이 돌기 시작하자, 삼성 전자 제품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고가의 제품을 대량으로 파는 Masstige 전략으로 칭송 받던 휴대전화에서도 대리점들이 삼성 제품 팔려면 판촉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삼성 제품을 들고 다니는 것이 Cool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서 큰 우려는 아니지만, 중국 제품 들고 다니면서도 당당한 고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가 보인다. 또한, 저가 시장을 점령한 중국 기업들은 중고가 시장을 넘보기 시작한다. 중국 기업들의 새로운 제품은 나올 때마다 일정 수준의 수요를 창출한다. 아직 고급 제품 기준으로는 경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고급 중에서는 저가이고 기존의 세련된 삼성 디자인에 비하여 파격적이고 튀는 디자인으로 일부 고객들을 유혹한다.
  • 이제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주요 시장에서 본격화되었다. 중고가 시장에서도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무섭다. 하나가 실패했다고 생각해도 곧 다른 것이 나오고, 또 나오고…… 과거에 삼성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면서 들었던 칭송이 생각난다. “우리가 저랬지……” 경영진의 전략 회의에서는 계속 고급화 시장전략을 유지하자는 의견, 일부 첨단 신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여 조기에 사업을 키우자는 의견, 소비자 제품에서는 완제품 조립은 철수하고 브랜드, 기술, 부품 판매로 돌자는 의견 등이 나온다. 중국 기업과의 합작 얘기도 들린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난상토론이 수개월 이상 계속된다.
  • 이제는 중국 기업들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한 가격 경쟁과 마케팅 비용 증가로 수익성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경영진의 전략 토의를 계속하면서, 직원들에게는 Value Innovation과 블루오션을 외친다. 한 두 개의 혁신적인 신상품과 Turn-around된 문제 사업들이 희소식을 가져오지만, 전체 삼성을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경영진이 결정한 것은 주요 사업의 매각 또는 중국 기업과의 JV이다. 언론에서는 “실질적인 삼성전자의 종말”이라고 대서특필이다. 경영진 회의에서는 계속 유지하기로 한 하이테크 첨단 부문을 통하여 삼성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이룩하자는 결심이 공유되지만, 침통한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중국 기업들과의 M&A나 JV 조인식에서는 중국 기업 경영진의 승리감에 찬 눈빛이 기분 나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들에게 백기를 올린 것은 사실인데…

 

Post-information socitey 고객의 변화

20세기 후반 이후 현재의 사회를 정보화 사회(Information Society) 또는 지식 사회(Knowledge Society)라고 한다. 정보화 사회의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수집, 가공, 유통 등의 업무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White Collar로 상징되는 사무직 종사자들의 업무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영업 관리자는 판매 데이터를 모아서 지난 달과의 차이도 보고, 제품이나 지역별 실적을 이리 저리 나누어서 성과를 측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공된 정보를 관련 부서 및 상급자들에게 전달한다. 심지어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도, 직접 육체를 움직이는 일이 아닌 지식 근로자적인 일을 한다. 생산 공정이나 품질을 모니터링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바로잡는다. 이러한 지식 근로의 특징은 이미 만들어진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정보를 생산하는 경우에도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시장 점유율 등 실제 존재하는 것을 수집하여 만들어 낸 정보이다.

현재에도 육체 노동자와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정보/지식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정보의 처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러한 정보의 처리 과정이 많은 부가가치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정보화 이후 사회(Post-information Society)는 상상력의 사회(Imagination Society, Dream Society)가 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있는데 필자는 같은 의견이다. “데이터”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뭔가 딱딱하고 정형화되어 있는 사실을 전달/습득/가공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에서, 직관적이거나 감성적인 느낌 같은 말랑 말랑한 것을 형상화하고 이를 세상에 적용하는 것이 지배적인 부가가치가 되는 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사실 이미 그러한 사회에 반쯤은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까지도 “큰 기업들이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어서 이제부터는 큰 사업을 이루기가 어렵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 생각이 맞지 않는다는 증거가 여기 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한 때 위세 당당하던 McDonald나 Kentucky Fried Chicken 같은 “필요한” 음식을 공급해주는 Fast Food 체인은 고전하고 있는 한 편, 분위기와 음식이 독특한 음식점들은 나날이 번성하고 있다. 재래시장은 몰락하고 있지만, 개성 있는 상품들을 파는 온라인 소상인들은 성공사례를 여기 저기에서 만들고 있다.

창의력은 항상 중요했고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었지만, 좀 더 소소한 곳에서도 상상력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려운 얘기이지만, 크게 두 가지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 소비자 선도형 이노베이션 
- 소비자와 공급자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

두 가지 현상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소비자 선도형 이노베이션이라는 말은, 많은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주체에 머물지 않고 뭔가 가치를 지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공급하는 주체로도 활동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환경은 새로운 저비용 유통구조를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만 있으면, 누구든지 초기 투자를 회수할 정도의 수요는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점점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니즈를 어차피 소수의 대기업이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 같은 현상은 점점 더하여 갈 것이다. 창조적 소비자들에게 또 하나 좋은 뉴스는 사업을 벌이는 비용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꾸미고, 물건을 사오면 기본적으로는 끝난 것이다. 이 사업을 취미나 부업으로 하려는 사람은 고객 서비스를 별도로 할 직원을 채용할 필요도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사업체의 운영상의 니즈를 해결해 주는 아웃소싱 서비스가 상당 부분 해결을 해 줄 것이다. 오프라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을 것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비 상업 지구에 인테리어 등 비용은 기업형 점포보다 훨씬 적게 들이면서도 창업자 개인의 창의적 감각이 확연히 드러나는 매장을 차려 놓고 개성 있는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점포들이 생겨날 것이다. 또는 자기 집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덜 하기는 하겠지만 제조업도 유사한 현상이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의 하이테크 벤처 기업들은 제품의 설계와 디자인만 하고, 제조는 대만의 생산 전문 업체에 맡기는 무공장(Fables) 회사가 많다.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생산과 설계/디자인의 분리 현상은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는 생산설비 투자 없이도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이란 소비자들이 공급자들에게 물건을 만들어 파는 단순 공급자 이상의 정서적 공감대를 기대하고 실제로 이렇게 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현상이다. 몸만 들어가는 닭장에서 달걀 공장 식으로 대량으로 낳은 달걀이 아니라, 풀어놓고 키우는 “옛날식” 농장에서 만든 달걀이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는 것을 해석하자면 소비자들은 “닭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에서 알을 낳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고, 일부 농장주들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러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회사를 지지하고 신뢰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한 바디샵이나 지나간 얘기지만 우리 나라의 파스퇴르 우유 같은 경우 건강과 환경에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창업자의 신념과 감정적 호소가 전달되고 이에 소비자가 동의한 결과라고 하겠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소비자들은 기업의 구성원, 특히 CEO에게 연대감을 느끼기를 원할 것이다. “저 회사의 CEO는 나와 생각이 같아”, “나는 저 회사의 창업자가 사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어”라는 생각에 따라서 상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 버진 그룹의 Richard Branson은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자서전을 냈다. Branson은 각종 기행으로 유명한데, 그러면서도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은 다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저가 항공사, 저가 온라인 금융사 등을 계속 선보였다. 자유롭고 기존의 엘리트적 이미지를 풍기는 기업 총수들에 비하여 너무나도 자유 분방한 그의 생활과 살아온 발자취에 영국과 세계의 팬들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늘 그렇겠지만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위의 두 가지 현상은 삼성에게 큰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 선도형 이노베이션은 삼성뿐 아니라 많은 대기업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예전의 소비자들은 기다리거나 기껏 의견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으나, 미래의 소비자는 직접 만들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이 변화가 실제로 큰 흐름이 된다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지만 사고와 사업방식에 모두 상당한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두 번째 현상인 소비자와 공급자의 동아리화는 좀 더 삼성에게 아플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최대 강점의 하나는 합리적인 조직 문화이다. 삼성 조직은 기본적으로 분석적이고, 어떠한 문제를 근본 문제를 따져서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감성화되고 있는 소비자 트렌드에 관하여 삼성 사람들도 많이 얘기하고 있으나, 그것은 이를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이지 삼성 사람들이 감성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삼성이 소비자들이 “내 친구처럼 느껴지고 나와 감정을 공유하는 공급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삼성의 최근 광고를 보면 사람들간의 따뜻한 정을 강조하는 등 인간미는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삼성 사람들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라고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소비자들이 회사뿐 아니라 CEO에게 그러한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할 때에 삼성의 경영자들이 과연 그렇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삼성의 경영자들은 “오직 1등만이 살아 남는다”, “세계 모든 초일류 기업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으니, 더욱 열심히 하여야 한다”라는 경쟁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마인드는 경영자로서는 당연하고,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런 경쟁적인 CEO들이 어느 날 환히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삶의 의미와 삼성이 함께 당신의 삶의 의미를 공유하겠다고 얘기할 때 뭔가 부자연스럽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내가 고객이었을 때 느낀 불편함 때문에 창업했다.”라고 얘기하며 소비자들처럼 입고 먹고 사는 새로운 CEO들에 비하여 더욱 강한 유대감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본적인 성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제품, 삼성만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이라면 이러한 환경에서도 영업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소한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경우, 더 인간미가 느껴지고, “나는 저 CEO를 믿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 회사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삼성이 다가가려면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큰 문화적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변화라면 해내는 삼성의 저력을 감안하면 결국은 적응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시장에서의 지위 하락이 수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의 많은 부분이 (특히 두 번째 얘기)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얘기이고, 실제로 일어날 지도 알 수 없는 얘기이지만 그러한 단초가 이미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계 기업으로서 처음으로 세계적인 기업이 된 삼성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계속 일류의 기업으로 남는 힘과 지혜를 갖기 바란다.

- 2005. 07 휴넷 (www.hunet.co.kr) 기고